• 최종편집 2024-04-21(일)
 

[꾸미기]강원제대군인지원센터장 (조애경).JPG

대동강물이 풀리고, 겨울 가고 봄이 온다는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은 꽃샘추위가 매섭기만 하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겠지만 3월초의 날씨는 항상 추웠기에 191931일도 추웠으리라 짐작해 본다.

 

칼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이른 봄의 추위도 독립에 대한 선열들의 염원과 의지를 결코 꺾지는 못했다.

 

19193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몇 달간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남녀노소, 지역, 학력, 계층 구분 없이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범민족적 자주독립 운동이었다.

 

31운동의 그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민족의 자존이 크게 고양되었고, 나아가 국내외 동포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독립역량이 결집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1919411일에 수립되어 체계적인 독립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고 조국광복의 벅찬 감격을 안겨준 발판이 되었다.

 

또한 자유와 평등, 자주와 독립을 천명한 위대한 31운동의 독립정신과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강력한 에너지는 세계를 뒤흔들었고 중국, 인도,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약소 국가와 약소 민족의 독립 운동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강원도의 3·1운동도 매우 격렬하게 펼쳐졌다.

 

춘천은 헌병사령부가 위치해 삼엄한 감시로 인해 다른 지역에 비해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하지는 못했다.

 

37일 춘천공립농업학교(소양고등학교, 당시는 교동 예전 춘천여고 자리에 위치)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있었지만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고 328일에 춘천장날 춘천장터(요선시장 거리)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있었다.

 

철원지역은 311~12일에 갈말읍 문혜리와 김화읍 청양리 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가 펼쳐졌고, 화천지역은 323일 동지화마을에서, 328일에는 상서면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원주지역은 327일에 노림의숙 학생의 만세시위가 있었고 45~12일에는 소초면사무소 앞에서, 흥업리, 귀래리, 손곡리, 매호리 등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잇달아 펼쳐졌다.

 

홍천지역은 41~3일에 홍천장터(홍천시장)와 옛 홍천군청 앞, 옛 동면사무소(동화중학교), 내촌면 물걸리(기미만세공원 위치)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횡성지역은 도내에서 가장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했던 지역 중 하나로 41일에 횡성장터에 모인 수천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양구, 고성, 양양, 속초, 강릉, 평창, 삼척, 영월 등지에서도 만세운동이 있었고 특히 양양지역은 강원도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크고, 여러 날에 걸쳐 만세운동이 펼쳐졌는데 대표적으로 양양면, 서면, 손양면 등의 4,000여명의 주민들이 연합해 44일 양양장날에 장터, 군청, 경찰서 등에서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렇게 우리 강원도 역시 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지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103년 전의 봄은 선열들의 독립을 위한 함성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가 사는 고장에는 만세 시위를 했던 그날을 기념하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사적지와 현충시설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는 103주년 3·1절에는 우리 모두 우리고장의 만세시위지, 독립 기념시설 등을 직접 찾아가 보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마음깊이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아울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 조국광복을 위해 신분, 종교, 지역을 초월해 온 국민이 하나 되었던 3·1운동을 교훈 삼아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대동단결하여 어떠한 국난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본다.

 

kw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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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애경 강원서부보훈지청 제대군인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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