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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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언어들이 있다


그중 아이들 대화속에서 자주 들리는 사회라는 두 글자는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며 뛰놀 던 소년원 담장 밖 세상을 말한다.


생활관, 교실, 운동장을 오가는 생활의 반복 속에서 아이들은 달력 날짜를 하나하나 지우며 그들의 세상으로 나갈 날 만을 기다리며 고대한다.


나는 추운 겨울 어느 날 상담교사로 춘천소년원에 왔다.


소년원으로 향하는 길은 굽이 굽이, 마치 미로 같은 느낌이 들었고 코끝을 아리는 찬바람은 더욱 혹독하게 느껴졌다.


소년원 근처에 다다랐을 땐 우뚝 솟은 망루 같은 건물을 보고 저 위에 총 든 교도관이 있나!’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첫 출근길 순간 망루로 착각했던 건물이 학생식당의 굴뚝이라는 사실에 쓴 웃음이 나왔다.


일정한 공간안에서 24시간을 함께 하는 아이들, 때론 툭탁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대꾸하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혼내며 이끌어가는 선생님들.


굴뚝을 보며 내가 했던 황당한 상상이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 아이를 만났다.


집에 있었으면 한창 어리광부릴 15살 사춘기 중학생, 무척 마른 나보다도 작은 체구에 어깨가 축 늘어져 우울해 보였고 호기심에 한 번 쯤은 쳐다보기라도 할 텐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전국 소년원 몇 곳을 떠돌았고 거칠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버림받았다는 괴로움에 스스로를 포기한 듯 자신을 학대하는 아이가 그저 가엽기만 했다.


형식적인 대화만 오가던 지루한 시간에 서로가 지쳐갔고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복도에 서 있던 나는 선생님, 저 인생 막살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퇴원하면 보호관찰 받으면서 잘살아 볼게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순간 머리를 맞은 듯 당황했다.


그 후 아이는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시간은 차곡차곡 종이가 쌓이듯 흘러 춘천소년원을 떠났다.


한순간 실수, 열악한 가정환경, 학교 부적응 등은 흔한 말이 되었고 관심과 사랑, 소통과 배려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청소년 비행의 심각성을 역설하고 책임을 운운하는 사람은 많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실천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우리 사회와 그리고 상담교사인 나는 더욱 더 심각해지는 청소년 비행앞에서 과연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단지 아이들이 저지른 비행 자체에 주목하며 그들을 탓하고 외면하는 방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나는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나를 당황케 했던 아이가 바깥세상에서도 변화된 모습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는데 소식에 의하면 고졸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중이며,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일탈과 함께 한 아이들을 믿음으로 지도한다면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서로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섞인 기대를 나에게 심어주었다.


오늘도 줄지어 교실로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며 정답없는 고민을 수없이 되뇌어 본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사연으로 가득 찬 소년원 학교 아이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kw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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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희 춘천소년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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