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꾸미기]배태환.jpg

중학교 때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라는 단어의 위력 때문에 교무실에 수차례 불려간 기억도 있다.

 

비록 담배를 피우거나 일진 행세를 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지각은 밥 먹듯 했고 수업 분위기를 자주 방해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을 때 분명 모범생은 아니였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여곡절 끝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어쩌면 운명 같은 존재였다.

 

선생님을 좋아했고 조금은 괜찮은 학생으로 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자율학습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자연스레 교칙을 잘 지키는 학생으로 변했다.

 

그 분이 내게 보여 주신 것은 대단한 노력도 강요도 아닌 그저 약간의 믿음과 관심 정도였지만 조금의 관심과 믿음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생경했다.

 

선생님 때문이었을까?

 

나도 조그마한 관심과 믿음으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꿈을 포기했고 다니던 대학도 휴학했다.

 

피자 배달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서울소년원에 피자를 잔뜩 가지고 간 적이 있었다.

 

축구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하나같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었는지 먼발치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린 기억이 난다.

 

그렇게 보호직 공무원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모습과 그 시절 품었던 꿈을 떠올리며, 시험 준비를 했고 합격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춘천소년원은 나의 첫 직장이다.

 

출근하면서 마음에 새긴 신조는 강요보다는 믿음의 힘이라는 말이다.

 

소년원 학교 교사라는 자격으로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에 이정표를 제시해주지는 못하고 이렇게 해라’, ‘이게 맞다지시하듯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있는 것일까?

 

만약 있다고 해도 효과가 있을까?

 

내 대답은 회의적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경험했고 나를 변화시켰던 건 강요가 아닌 믿음이었기에 항상 그런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끔씩 상담을 요청해 온다. ‘대학은 꼭 가야하나요’, ‘어느 대학이 좋을까요’, ‘전공은 뭘 해야 할 까요등등.

 

그럴 때마다 나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나의 판단과 권유로 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 하고 싶지 않아 오롯이 이정표만 제시 해줄 뿐 선택은 본인들이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판단을 믿고 그에 따르는 책임 또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일찍 방황하고 깨닫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학생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애초에 강요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면서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퇴원생과 연락이 닿았다.

 

목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진학, 학원수강, 취업 중 무엇을 선택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아이다.

 

집으로 돌아간 후 학원을 다닌다는 말에 흐뭇했고 목표를 바라보며 조금씩 달라져가는 모습에 별로 한 것은 없지만 뿌듯했다.

 

아이를 바라보며 믿음이라는 두 글자를 늘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얼굴 한가득 여드름 많던 시절, 반항했고 방황했지만 결국 아픔은 성숙함으로 변했다.

 

쓰디쓴 경험을 밑거름으로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한 걸음씩 소년원 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계속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지만 보호관찰소, 비행예방센터에서도 아이들과 마주칠 것이다.

 

그 때도 강요가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고 싶다.

 

kwtimes@hanmail.net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 배태환 춘천소년원 교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