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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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너네 집이냐? 어디 한번 가봐아파트 입구에서 일면식도 없는 학생 3명이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를 가로막고 낄낄거립니다


겁에 질린 아이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기가 죽어 있습니다.


재미있다는 듯 또 깔깔대며 왜 신고할 거야?”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울면서 건물 밖으로 도망치자 학생들은 급하게 그 뒤를 쫒습니다


그제야 학생들은 야야! 아이스크림 사줄게. 우리랑 가자.”, “~ 알았어. 집에 가게 해줄게애써 상황을 무마해 보려합니다.


이 장면은 학교폭력일까요? 아니면 철없는 아이들의 단순한 장난일까요? 만일 내 아이가 가해자나 피해자였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우리 부부는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소년원 학교, 보호관찰소, 비행예방센터에서 위기청소년들을 상담·교육하고, 때로는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방적 차원의 법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발령이 나는 곳마다 워낙 업무가 다양하고 감정노동이 심한 곳이지만 안전한 사회,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 평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왔고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앞에서 언급한 장면은 우리 가족이 실제 경험한 피해사례입니다.


심지어 그날 아이 아빠는 일선 학교 법 교육 강연을 하면서 배려는 마음의 법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열띤 강의를 하던 날이었지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이는 학교 가기가 너무 무섭다며 자신을 괴롭힌 언니들을 언제 경찰이 잡아갈지 매일매일 물었습니다.


집 앞에 나가기만 해도 언니들이 있을 것 같다며 주위를 살피곤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언니들이 너무 밉다며 험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다가 깨는 일 또한 여러 번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힘들어하던 시기, 가해 학생들은 태연히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울화통이 치밀었고 비행청소년을 선도하는 일을 하면서도 막상 내 아이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끝에 결국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던 중 경찰로부터 연락이 온 날은 더 황당했습니다.


가해자가 같은 학교 학생이며 나이가 어려 소년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라도 열어야겠다며 울분 섞인 말로 학교 측에 넘겨달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와 가해학생들의 대질조사가 이어졌고 부모 면담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법이 안 되면 학교 내 징계라도 원했지만 아이 아빠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아이를 정상적인 생활패턴으로 돌려주는 것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해보자고 하더군요. 가족들 모두 함께 대화 했고 그 대화 속에서 아이도 기특하게 답을 찾아갔습니다.


정말 원하는 건 학교를 다시 행복하게 다니는 것이라고, 언니들이 사과하면 자신도 용서할 수 있겠다고...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학교 측에 장문의 편지를 전했습니다.


법 이전에 배려와 이해로 해결하고 싶다는 뜻을,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대면 문제, 가해학생 부모와 피해학생 부모 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우리 부부의 고심을 적어 보냈습니다.


모두 협의한 결과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아닌 가해학생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함께 대화했고, 우리 아이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겪었던 심정과 앞으로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지 이야기 했습니다.


가해 학생들은 손수 적어온 편지를 전달하며 직접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언니들에게 편지를 받았다며 기뻐하던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은 가해자들을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어른들과 내 아이만 생각하는 배려를 모르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소년원 학교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가 흔들릴 때 누군가 잡아주었더라면 이렇게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라는 말을 의외로 많이 듣습니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일은 아이들 몫이지만 그 뒤에서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잘못하기 전에 상대에 대한 배려의식을 갖게 해주는 것은 사회와 어른의 몫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소년원 학교는 모든 외부활동이 중지되고 면회가 제한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단체에서 학생들을 위한 격려와 후원이 이어지고 있어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자원봉사자들’, 이런 마음이야말로 배려의 실천이 아닐까요?


기침할 때 소매로 입을 가리는 3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미 나는 배려를 실천하고 있듯 책에서 배우는 거창한 배려가 아니더라도 지금 바로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가슴속에 배려는 마음의 법이라는 말이 새겨질 수 있도록!, 깊은 관심과 배려로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내일을 선물할 수 있도록!

 

kw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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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영 춘천소년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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